이야기 하나.
하이 피델리티 - high fidelity 라니까 뭔가싶지만 사실 우리가 하이파이라고 부를때 바로 그것. 높은 원음 재현도? 혹은 높은 정절? 두가지로 해석이 가능할듯. 존 쿠색 주연으로 역시 영화화되어 잔잔한 재미를 주었다 - 의 작가 닉 혼비의 사교성제로독신남성의 사회성 향상 프로그램, '소년에 대해서' 이다. 이 제목 역시 이중적 의미로군. 자기는 다 큰 어른일줄로만 아는 주인공은 실은 사교성제로에 인간관계도 없이 그저 아버지가 물려준 재산으로 혼자 잘먹고 잘사는 '섬'과 같은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자살시도하는 우울증 싱글맘의 아들과 친구가 되면서 펼쳐지는 역시나 잔잔한 재미를 주는 영화.
닉 혼비의 매력은 이렇듯 일견 삭막해만 보이는 현대 사회의 일상에서 인간와 인간 사이, 그래도 아직은 남아있는 끈끈한 무엇인가를 끄집어내는 능력같다. 탄탄한 원작에 휴 그랜트!!!!!!!!! - 다른 또 누군가 이 사교성제로의 독신남자 역을 이렇게 소화할수가 있을까 이말이지..- 와 저 저 귀여운 녀석.... 최근에 저 귀엽기만 했던 뇨석이 징그럽게 다 커서는 하이틴을 위한 영국 tv드라마의 주인공으로 활약중이다. 아 옛날이여~~
Nicholas Hoult
하여간 이 영화는
' no man is an island' 라는 단 한 문장으로 마지막 감동의 펀치를 날리는데,
그리 센듯하지 않았는데 자꾸 자꾸 생각나게 만들어 버리는 희안한 충격파를 발산한다.
이야기 둘.
e.r 의 에피소드중 아내를 교통사고로 잃었는데, 마지막 임종을 출장가느라 하지 못한 어느 남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아내가 마지막으로 있었던 병상을 찾으며 담당의사를 통해 아내의 마지막 유언이나 이야기를 듣고싶어한다.
하지만 바쁜 er 사정에 누가 담당의사였는지 잘 모르게 되고 남자는 아내가 있었다는 병상에서 4시간을 기다린다.
애초에 자신의 담당이 아니었다고 자신있게 말했던 닐라는 마침내 자신이 담당이였다는 확인을 받고는
전혀 떠올리지도 못했던 자신에 놀라고, 또 남자에게 무엇인가 위로가 될 말을 해주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자신의 환자였음을 기억도 못한 미안함도 있지만, 그를 위해 무엇인가 위로가 될만한 말들을 지어내야 하는 상황에 놓인 닐라는 그러나 그것 역시 환자를 위하는 의사의 '의무'임을 여럽사리 깨닫게 된다.
오른쪽이 닐라. 왼쪽 애비~~
이 이야기를 왜하냐면. 그 때 그 아내를 잃은 남편의 이름이 무슨무슨 putnam 이엇다.
발음상 특이하므로 잊어버리기 쉽지않을듯한 이름이었는데,
er의 닥터들은 기억해 내지 못할 정도로 정신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는 뜻일거다.
저렇게 특이한 이름조차 기억해 내지 못할 만큼 바쁜 er 닥터들이 사고 하나 없이 의사생활을 할수 있을것 같은가?
그런 사회적 반문을 던지는 씬 이었고, 마이클 크라이튼의 장기,
이것이 바로 지금 현재 미국의 응급닥터들의 현실이라며 폭로하는 게지.
아마도 putnam의 이름은 정치학자 robert putnam에게서 따왔을 거라고 확신한다.
Robert D. Putnam
그는 현대 미국사회의 특징, 서로가 서로와의 연결고리를 잃어가고 있는 사회현상에 주목했다.
가족끼리도 친구끼리도 친구, 학교, 마을, 주, 전체적으로 보면 국가까지 개인과 개인이 서로 고립된채 살아가는
현재 상황을 바꾸어야만 한다고 역설했던 학자였고 아래의 책 '혼자서 볼링하기'의 대힛트 이후 당시 대통령이었던
빌 클린턴 대통령과의 면담으로도 유명해졌다.
볼링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어나는데 반해, 볼링대회는 오히려 줄어든다는 거다.
마치 인터넷 인구-동호회-홈피는 폭발적으로 늘어나는데, 그저 그들은 그렇게 존재만 할뿐일지도 모르겠다.
비판도 많고 현대의 인터넷을 통한 연령별, 성별, 인종별, 종교별 커뮤니티에 대한 연구는 빠졌다는 비판도 들었지만
이 책이 나왔을 때는 1995년이었고, 세계 인터넷 최강국 대한민국에서조차
유니텔이 처음 시작되던 해(1997인가) 였던것을 떠올리면 이러한 비판은 뒷북이다.
오히려 누구보다 먼저 이러한 현상에 주목하고 이를 극복하게 위해 노력하자는 점에
점수를 줘야하지 않을까. 단지 그 극복의 영역을 인터넷으로도 넓히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인터넷 커뮤니티들, 이글루를 비롯한 싸이월드, 네이버, 다음 까페 등의 인터넷 커뮤니티들이
정치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가?
좀더 빠른 많은-대부분은 쓸모없는- 쓰레기정보들만을 퍼뜨리는 것은 아닐런지?
연예인 누가 이혼을 하고 바람을 누구와 피는데, 누가 고위급 정부인사와 무슨 일이 있고 ...하는
재활용되기나 하는 쓰레기 만도 못하는 공인의 사생활에 대한 추측같은 것들에는 광적인 반응을 보이고
막상 자기 주머니에서 세금이 더 새어나가고 자신의 인권이 유린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는 무감각해지는.
사실 이러한 문제는 개인의 무관심도 문제지만, 이 거대한 시스템, 도무지 이 견고한 체제가 변치않음에 대한
현실적 타협일지도 모른다.
여하간 얘기가 괜히 길어진다.
요는
사회속에 있는한 그 누구도 그 어느 누구와 상관없을수 없다.
안양 혜진이와 예슬이는 나와 어떤 관계가 있어질까?
아직 16개월 밖에 안된 조카녀석이 커버린 세상에서는
무엇이 이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
지금 사회를 이끌어가고 있는 우리들이 해야할 일은 무엇일까?
문제가 그리 녹녹치 않음을 깨닫게 된다.
푸꼬는 '광기의 역사' 같은 책을 써서 괜시리 맘만 무겁게 만들어 버렸다.
무엇을 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는데.
사실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이 아이들의 이야기를 애써 모른척 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모른척 하는게 아니구나.
내일이 아니라고 나랑 뭔 상관할 일이 아니구나
그러게 아이들 간수나 잘하지 라는 차갑고 인정머리 없는 말을 내뱉는 인간들에게
무언가 한마디 해주어야 하는 구나.
남대문 불타버린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우울한 기분이다.
이은주 이후 이렇게 우울한 사건도 없었다. 설사 2메가바이트 정부가 들어섰을때도
이렇게 우울하진 않았다. 적어도 그 사건은 들러붙는 사람도 많고 관심도 많다.
하지만 이렇게 사라지는 아이들을 위해 우리들이 할수 있는게
고작 앉아서 범인이나 욕을 하는 수준에서 끝나야 하는 걸까?
닉 혼비의 이야기와 정치학자의 벽 깨기 운동이 갑자기 연결되면서
이렇게 앉아 있을수 만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과연.
무엇을 해야 할까.